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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택시기사 권태경의 세상 엿보기(안동지 통권 104호)
이 름 hahoemask
등록일 06-07-04 09:37 조회수 1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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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이야기> * 위대(胃大)한 다지마 상 겨울에는 일본인 관광객을 자주 손님으로 모신다.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탈춤인이라는 신분과 더불어 택시기사라는 직업 덕에 이런 기회가 오곤 한다. 치밀한 일본인들은 한 달 전에 예약을 하고, 일주일전에 확인하고, 이틀 전에는 재확인을 한다. 그날 손님은 신정연휴동안 한국의 관광지를 등산하는 50대 남자 네 명이었다. 그날도 하루 전 예약을 확인하고 시내 모텔에서 새벽 5시30분에 만나 청량산으로 출발하여 등반에 3시간, 도산서원과 국학진흥원 방문, 시내터미널에 4시 도착 예정으로 일정을 잡았다. 청량산으로 출발하여 3명은 등산을 하고 다리가 불편한 다지마 상은 나와 함께 차 안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지마 상은 서툰 우리말로, 나 또한 반타작하는 일본말로 대화를 했다. 내가 안동시의 자매도시인 사가에市와 하회마을의 자매마을인 시라카와 민속마을을 탈춤공연과 우호방문으로 서너 번 가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우리는 별 문제 없이 말이 잘 통했다. 어려운 한국말을 배우는 다지마 상의 학습을 위해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가사를 적어주고 같이 부르는 동안 일행이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에 청량산 박물관에 들렸다. 전 국토의 반 이상이 산인 한국과 섬나라인 일본. 이 두 나라의 생활상은 비록 다르지만, 흙에서 나고 흙에서 얻고 또 흙으로 가는 인생사는 다르지 않기에 우리는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였다. 안동으로 오는 길에는 너와지붕으로 된 황토집이 있었다. 일행은 너와지붕과 황토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황토집에 들어가 보니 식당영업을 하는 곳이었다. 잘 정돈된 전통의 장식과 황토의 자연스러움에 음양의 조화를 더한 벽난로는 남다른 운치를 느끼게 해주었다. 식사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다지마 상이 ‘한국 동동주 좋아요’하길래 한 단지 주문해서 반주 겸 식사를 마쳤다. 그런데 다지마 상이 ‘한국 동동주 또 좋아요’하는 것이다. 동동주를 더 달라는 뜻이었다. 주인이 포장해갈 것인지를 묻기가 바쁘게 글쎄 혼자서 한 단지를 다 비워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도 모르게 “위대(胃大)한 다지마, 대단해요!”하니 모두들 박장대소 하였다. 마침 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벽난로의 온기와 취기가 무르익자 그들은 다음 일정을 취소하고 주인내외와 기념사진도 찍는 등 그곳에서 좀더 머무르다 가자고 했다. 넉넉한 웃음을 한 주인장과 제대로 익은 갓김치와 손수 만든 전통차를 덤으로 주시는 후덕한 인심의 안주인. 어느새 다지마 상은 술에, 날씨에, 분위기에 취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구성지게 부르고 있었다. 눈 내리는 청량산. 눈 덮인 너와집을 배경으로, 우리를 배웅하는 온화한 주인내외를 뒤로하고 길을 나섰다. 돌아오는 택시 안은 영어, 일어, 한국어. 온갖 언어로 뒤섞여 왁자지껄 대화가 이어졌다. 어느새 도착한 안동. 일행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작별인사를 하는 데만 20분을 소요했다. 다지마 상은 부드러운 얼굴로 내게 마지막 인사말을 건넸다. “권상. 한국과 일본은 친구입니다.” “그럼요. 다 친구입니다. 세계가 모두 친구 맞습니다.” 짧은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그들은 내게 특별한 추억을 남겨주었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천천히 시동을 걸고 출발하였다. <여섯번째 이야기> * 귀한 선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선물을 주고받는다. 선물이란 좋은 기분으로 주고 고맙게 받는 것, 그것이 바로 최상의 선물일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주는 기회가 많아서 일까, 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 하지만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한 귀한 선물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것은 바로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2년 전, 옥동에는 대형할인마트가 개장했다. 며칠동안 많은 차량과 쇼핑객들로 북적였다. 그 와중에 할머니 두 분을 모셨다. 타시자마자 소녀처럼 재잘거리는 할머니들은 내게 말을 거셨다. “아따, 기사양반! 옷 하나 좋은 거 입었네!” 내가 입고 있던 옷은 황토 염색된 옛날 무명옷이었다. 벌써 내 몸에는 착 달라붙어 몇 년을 입어온 옷인지라 별 의식을 못하다가도, 지나가다 한번씩 얘기해주시면 그냥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날도 의례적인 칭찬이지 싶어 별 생각을 안 하고 운전을 하는데 두 할머니 중 한분이 자꾸 내 옷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중얼거렸다. “희얀타. 우예 요새도 이런 천이 다 있노. 으잉?” “할머니. 저는 항상 한복만 입어요” “그래, 그래! 보기에도 좋고 편체?” 다정하신 두 분의 할머니는 자매지간이고 동생 집에 다니러 오셨다가 대형마트도 구경할 겸 옥동까지 오신 거라 했다. 옷에도 관심 많고 호기심도 많은 언니 할머니는 차안에 비치된 택시운전사자격증을 한참 살피시다가 갑자기 외치신다. “에고, 우리 일가네? 항렬자도 같고!” 그러자 동생 할머니께서 언니 할머니의 나서는 성격을 말리 듯 조용히 한 말씀 하셨다. “언니! 안동에 바틀리는 게 다 권가다!” “그래도, 일가 만나기 안 쉽다. 오늘 동생 만나 반갑네!” 나는 능청을 떨며 “예. 누님 저도요.” 말하곤 껄껄 웃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진지하게 말씀을 하셨다. “그라마, 잘됐다. 내가 시집올 때 해온 무명이 있는데 동생 주까?” “아이고 누님 괜찮아요. 말씀만이라도 고마워요.” “아이다 아이다. 지금 내 나이에 있는 옷만 해도 죽을 때까지 다 몬입고 우리 애들은 무명이 뭔지도 몰래....내가 찾아보고 자네 갖다 줄꺼이 응?” 이거는 주신다는 분이 워낙에 간곡히 말씀하시니 더는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주십사 말씀드렸다. 다음에 안동장날 나올 때 연락하신다며 명함을 챙기는 할머니. 그날로부터 일주일 뒤 쯤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택시 동생인가?” “예!” “내가 지금 여 울 동생 집에 있는데 시간 나는 데로 함 올라는가?” 할머니의 전화를 받고 동생 할머니 댁으로 가니 반갑게 맞으신다. 소중하게 간직해온 무명을 건네주시는 할머니의 표정은 더없이 온화해 보였다. 귀한 물건 그냥 받는 게 송구스러워 조심스레 할머니께 여쭤보았다. “할머니, 얼마 드리면 될까요?” “어허, 나를 그래보지 말그래이.” “그래도, 그냥 받기가......” “젊은 동생, 기특하고 마음에 들어 주는거래.” 내 성의표시를 끝까지 거절하시며, 오랜 세월 고이 간직한 추억의 물건을 보내시는 할머니. 주고도 즐거워하시는 시골 할머니의 인정과 여유. 장시간 앉아서 운전하는 내게 너무나 많은 행복과 세상이치를 깨우치게 해주는 할머니 같은 분들이 있기에 오늘도 운전할 맛이 나는 것이다. 할머니의 무명을 건네받고 오는 길, 나 또한 할머니에게 멋진 선물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할머니. 하회마을에 탈춤구경 오세요. 쪽박을 허리에 찬 할미의 구성진 베틀가도 들어보시고 신명나면 뒤풀이 춤도 추시고 말이죠. 마당 끝나면 할머니가 주신 무명으로 저고리 만들어 입고 시원한 동동주 한잔 대접할게요.’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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