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지 105호 "글쎄,운전해보믄 별일이 다 있소" & 쿠미와 유미 > 공지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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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동지 105호 "글쎄,운전해보믄 별일이 다 있소" & 쿠미와 유미
이 름 hahoemask
등록일 06-09-01 21:00 조회수 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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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이야기> 글쎄, 운전해보믄 별일이 다 있소 택시를 운전하다보면 황당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물론 매너 있고 정감 있는 손님도 많지만 억지를 부리는 손님도 많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휴대폰을 두고 간 손님 -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 꼭 갖다달라고 하신다. 억지로 시간 맞춰 먼 곳까지 가면 기본요금만 달랑 내놓는다. 내 돈 어쨌어! - 지갑을 두고 간 손님이 있어 다행히 발견한 내가 찾아줬다. 그런데 집에 가져가서 보니 지갑에 현금이 모자란다고 호통을 친다. 좋은 일 했다가 되려 야단맞고 마음도 편치 않아 이래저래 고생이다. 이 택시가 확실해! - 다짜고짜 “어제 이 차 탔었는데 뒷좌석에 놓고 간 내 지갑 내놔” 한다. 뒷좌석은 기사가 볼 수 없고 손님은 계속 타고 내리는 데 방법 없다. 내 눈에 띠면 당연히 돌려주지만 졸지에 억울한 신세가 되곤 한다. 고발할거야! - 지금이야 1800원으로 기본요금이 올랐다지만 얼마 전까지는 1500원이었다. 평소 1500원 거리인데 1900원 나왔다며 역정이다. 나로서는 빙빙 돌아간 것도 아니고 빤한 길 제대로 왔는데 이런 식의 항의는 곤란할 수밖에 없다. 손님은 ‘내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타는데 고발해버리겠다’고 으름장이다. 한참 일장연설 후 1900원 던져 넣고는 그래도 분이 덜 풀리는지 고발은 고발대로 한다 어이쿠, 사정 봐주니 - 어른 다섯 명 타자고 사정사정해서 그렇게 해주니 목적지가 모두 다르다. 두 번째 내리는 손님이 2000원 내면서 거스름돈은 두세요, 하고 호기롭게 내리면 마지막 손님 내리면서 1900원 요금 확인하고는 기어코 100원 받아간다. 할머니식 계산 - 안동병원에서 할머니 모시고 버스터미널 마당까지 요금 2000원 나오면 1500원만 내신다. 할매 500원 더 주세요, 하면 ‘내 계산이 더 정확하데이, 다시 함 가볼래’ 하고 으름장이다. 평소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안동사람들과의 대화는 거의가 만담수준이다.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고마, 여 내라주소’ 하면 버뜩 세워 줘야 하고, ‘문 닫으소’ 이 말은 ‘창문 올려주소’로 알아먹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졸지에 답답한 양반이 되는 거다. ‘여가 어디래요’해서 ‘택시 안일시더’ 이래 대답하면 이 양반이 실성을 했나 할 것이다. ‘육교 위에 내라주소’ 하믄 ‘육교 위로는 차가 못가니더’ 요렇게 대답도 하고프다. ‘옥동 택시 서는 데 내라주소’ 이카면 ‘택시는 어디든 다 서니더’ 요러고도 싶다. ‘역전 앞 가시더’ 그럼 또 내 입이 근질거린다. ‘아지매, 역 뒤에는 어차피 못 가니더’ ‘분수 대 앞 가시더’ 하면 ‘분수대는 둥글고 물은 하늘로 치솟니더, 그캐도 가자면 가지요.’ 젊은 기사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없어진 건물 찾기도 있다. 나이아가라식당, 보안대, 강서파출소, 농고사거리, 신시장 육교, 비행장 등. 손님들이 가자카면 다 가야된다. 허허, 그래도 마카 알아듣는 나도 맹 안동촌놈일시더~! <여덟번째 이야기> 쿠미와 유미 하회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민속마을이다. 대다수의 문화재와 건축물은 보존을 이유로 전시와 관람을 위주로 하지만, 하회는 일상생활 속 에 관리 보존되고 있다. 하회마을 전수관에서 열리는 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공연은 매회 관광객으로 만원이다. 어린이들의 견학, 체험학습,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들과 여행사의 이벤트, 한류열풍 등....이러한 공연의 중심에 탈놀이보존회 연출국장인 나는 책임이 크다. 관람객 안내에서부터 좌석배치, 출연진의 배역, 특히 퇴장하는 관람객과 함께하는 공연뒤풀이에 대한 반응이 좋다. 다음공연의 홍보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고, 어깨춤도 신나게 들썩이며 그날의 공연을 갈무리한다. 한바탕 노니는 마당을 끝낸 후, 별로 웃을 일이 없는 이 시대에 마음껏 웃었노라는 어느 할아버지의 의미 있는 한마디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그날도 어김없이 공연장을 마무리하는데 두 분의 여자 관람객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나는 “혹 무슨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하고 물었다. 일본인인 두 여자 분은 쿠미와 유미라는 이름을 가진 모녀였다. 한국어를 배우는 중이고 영어도 곧잘해서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배역에 따라 구분되는 춤사위, 관객과의 대화, 악사들의 추임새 등이 일본의 전통가면극인 노 가면극과는 대조적이지만 국가와 국민의 정서를 그대로 볼 수 있는 탈놀이였다는 평가를 해주었다. 안동에서 3일정도 여행하고 서울로 갈 예정이라길래 지도를 보면서 안동의 볼거리를 설명해주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나의 직업을 묻길래 공연 없는 날은 택시영업을 한다고 하니 ‘그럼 안동에 있는 동안 함께 합시다’ 하며 쿠미와 유미는 나보다 더 좋아한다. 기분 좋은 출발로 풍산을 지날 쯤 배낭을 메고 가는 여자를 발견했다. 뜨거운 여름 한낮, 힘들어 보였는지 쿠미는 ‘같이 타고 가면 좋겠어요’ 한다. 차를 세우고 내가 어디 가냐고 물었다. 시내에 간다기에 그럼 같이 타고가자고 했다. 여자분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차에 올랐다. 그녀의 집은 서울이고 이름은 순애.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주일정도 국내여행을 하는 중이란다. 순애씨는 일본어가 능통했다. 우리는 각자 소개를 했는데 쿠미여사는 나하고 나이가 동갑이고 순애씨는 유미와 동갑으로, 우리는 완전한 친구가 되었다. 택시 안은 바깥 날씨만큼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쿠미와 유미는 “안동에 있는 동안 순애씨 함께해요”한다. 순애씨는 신세지면 안 된다고 정중히 거절했으나 유미는 괜찮다고 환하게 반긴다. 순애씨도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그럼 좋아요.” 하고 응하니, 쿠미는 이틀 치 택시비를 계산하면서 “우리친구 권상? 잘 부탁합니다.” 한다. 나는 “순애씨 오늘 저녁식사는 내가 쏜다고 해주세요” 하니, 순애씨가 알기 쉬운 일본말로 번역을 해준다. 우리는 즐거운 기분으로 시내에 나와 태사묘에 들렀다. 안동을 본관으로 쓰는 김, 권, 장씨는 성은 달라도 본관이 같아서 혼인을 할 수 없었던 점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안동 권씨 족보 “성화보”를 설명하자 쿠미는 놀라워했다. 안동소주공장에서는 술을 내리는 과정, 우리음식 전시장에는 궁중음식 상차림을 보고 마지막 시음코너에서 쿠미는 석 잔을 내리 마시고 안동소주 2병을 구입하는데 이제 보니 상당한 주량의 애주가였다. 어느덧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나는 이들을 손국수집으로 안내했다. 푸짐한 채소와 빛깔고운 조밥, 맛깔스런 쌈장과 젓갈 그리고 가득담은 국수. 한국음식의 넉넉함에 유미는 놀라워했다. 자기그릇에 덜어먹고 자기밥값만 계산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 도시락 문화에 익숙한 유미는 연신 카메라셔터를 눌러대는 등 호들갑을 떨며 즐거워했다. 다음날 아침에 하루일정을 짜고 봉정사 대웅전에 들어 영국여왕 방문시의 기와불사가 용마루 중간에 있다는 설명을 듣고, 풍산한지에서는 한지 원재료인 닥나무와 건조를 기다리는 껍질, 수작업하는 제조과정을 보고 전시관에서 그림, 공예품, 의복 등 한지를 소재로 하는 것에 감탄하고 다시 하회마을로 왔다.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을 보며 순애씨는 물돌이 하회의 뜻을 이해하고 우리는 만송정에서 자리를 잡고 쉬어가기로 했다. 강에 비치는 부용대, 석양의 노을, 수많은 세월을 이겨낸 소나무의 자태에 취해 깊은 생각에 잠긴 쿠미가 갑자기 내게 말한다. “권상! 우리 안동소주 한잔 합시다.!” 순간 우리는 모두 박수를 치며 전날 산 안동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한 병을 비웠다. 45도 알코올의 반응은 국경이 없고, 하나 된 기분은 강물처럼 불었다 줄었다 하며 그 흥이 만송정 소나무처럼 하늘을 찔렀다. 갑자기 쿠미가 시를 한수 읊는다. “저산으로 가는 저 기러기. 어찌 홀로 나는가. 님 맞으러 나는가. 나도 저 기러기 되어 먼저 가버린 님 찾아 갈까 하노라.” 이렇게 돋우는 흥에 나 또한 어찌 그냥 있겠소, 하고 답을 하였다. “부용대 뜬 달이 저 강에 떠 있고, 술잔에도 들어와 있소. 그대 눈동자에 내가 비치니 내 마음에 달도 뜨는가 보구려.” 그렇게 만취된 한일우정의 밤은 깊어만 가고, 다음날 서울 행 기차로 아쉬운 작별을 하는데 유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와 친구 하세요, 유미가 도와드릴께요.” 쿠미와 나는 크게 웃고 말았다. 그렇게 그들이 돌아간 후 보름 뒤 한 장의 편지가 도착했다. 조금은 서툴지만 또박또박 정성스레 쓴 편지에 나는 빙그레 미소가 절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를 기억하세요? 나는 하회를 사랑합니다.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같이 찍은 사진도 보시고 일본에 오시면 저한테 편지 주세요. 저의 고향에 초대하여 소개시켜 드릴게요. 순애는 우리 집 가까운 곳의 여행사에 취직이 되었고 외동딸 유미와 좋은 친구가 되었어요. 권상! 후지산에 떠있는 달을 보면서 정종 한잔 어떨까요. 또 만나길 기대해 봅니다. -일본에서 쿠미 <안동> 글쓴이 권태경씨는 8년째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현재 경안택시에 근무 중이며,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 별신굿 탈놀이 보존회 전수조교로도 활동하고 있다. 통권 105호 - 택시기사 권태경의 세상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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