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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택시기사 권태경의 세상 엿보기 - 밀양 가는 길
이 름 hahoemask
등록일 07-08-29 10:23 조회수 1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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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가는 길(글/권태경) 그날도 하루를 마감하려고 자정시간에 맞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 앞 마지막 신호에 대기 중이었는데 어디선가 급하게 달려온 손님이 뒷문을 열고 들어와서 외친다. “아저씨! 장거리도 갈 수 있어요?”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인사할 틈도 없이 “어디요?” 물으니 “부산역까지요.” 한다. 평소에는 마감시간에 집만 보고 가는데 부산이라 생각하니 ‘에라, 장거리 뛰고 내일 하루 쉬면 되지.’ 싶어 “부산. 예 좋습니다. 출발합니다.” 하고 출발했다. 나는 습관처럼 미터기를 눌렀다. 손님은 시내를 벗어날 때까지도 요금에 대한 반응이 없었다. 훤칠한 키에 미소까지 아리따운 아가씨를 장거리 손님으로 모시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남안동 IC에 도착했다. 그때 손님에게 걸려온 전화 한통. 한참 통화하던 손님은 내게 전화를 바꿔준다. 전화 속 남자가 내게 “부산이 아니고 밀양으로 와주세요.” 한다. “국도로요 아니면 고속도로로요?” “고속도로로 오세요.” “그럼 어느 IC에서 내리면 빠르지요?” 하니 “양산이나 뭐 알아서 빨리 오세요.” 한다. 경산휴게소에 잠시 쉬면서 손님 마음을 떠보려고 “아가씨. LPG충전을 해야 되는데 차비를 미리 주시면 안 될까요.” 하니 “저 지금 돈 없는데요.”한다. 나는 놀라 “아니 그럼 택시비는 어떡하시려고요?” 물으니 “걱정 마세요. 밀양에 도착하면 오빠가 해줄 거예요.” 한다. “도착해서 혹시나 해결 안 되면 어쩌지요?” 그러자 대뜸 내게 호통을 치는 아가씨. “아저씨. 어디 속고만 사셨어요!” 그러더니 다시 오빠라는 사람과 통화를 하더니 호기롭게 외친다. “아저씨! 택시비, 고속도로비 따로 줄 테니 빨리 오기나 하래요.” 한다. 내심 불안하기도 하고 경험으로 볼 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가씨. 나는 여기서 그냥 돌아 갈 테니 내리시죠.” 했다. “아저씨. 걱정 마세요. 오빠가 사장님인데요, 택시비 안주고 그럴 사람 아녜요.” 한다. 어쩔 수 없이 출발하면서 룸미러로 흘끗 보니 연신 누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하는 표정이지만 나는 못내 불안했다. 드디어 3시간 만에 밀양에 도착해서 오빠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도록 하니 20분간 통화를 시도해도 전화기가 꺼진 상태란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딱 이짝이다. “아가씨. 대체 어떡할랍니까?” “나도 몰라요.” “있는대로라도 요금을 내세요.” “십 원 한 장 없어요.” 나는 잠시 인내하며 운전석 문잠김 버튼을 누르고 시내로 서행하며 주위를 살펴봤다. 한참 주행하다보니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 중이었다. 옳지 싶어 가까이 섰다. 원래 손님이 탄 택시는 그냥 통과시키지만 일부러 세웠다. “어, 기사님. 안동에서 크게 한 건 하셨습니다.” “경찰 아저씨. 그게 아니고 수상한 손님인데 파출소 가서 이야기 합시다.” 경찰차의 앞뒤로 안내를 받으며 파출소 마당에 도착했다. 경찰에게 뒷문으로 오게 해서 여차하면 달아날지도 모를 아가씨의 손을 꼭 잡고 들어가게 했다. 나는 다른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경찰은 지금까지의 미터기요금 24만 원 정도와 현재시간 등을 기록했다. 상황을 파악한 경찰은 아가씨를 불러 앉혀 차분히 이야기했다. “손님, 차비 계산하시죠.” “없는데요.” “택시비 안주면 사기죄에 해당하고, 유치장에서 이틀 살아야 돼요. 여기까지 택시를 타고 왔으면 택시요금을 내야지요.” “아, 없다니깐요!” 더 큰소리로 대답하는 아가씨를 보자니 어이가 없었다. 경찰이 안 되겠던지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하니 없다고 한다. 주민등록번호를 대라고 하니, 것도 모른다고 한다. 경찰이 화가 나서 실랑이 끝에 생년월일을 확인하니 만 16세 미성년자다. 경찰도 나도 어안이 벙벙해서 한참 멍하니 있었다. 누가 봐도 20대 후반의 외모였다. 경찰이 조회를 해보니 일찍이 부모가 이혼하고 티켓다방 등을 전전한 이력이 있었다. 한참 뒤에 엄마하고 통화가 되어 얘기를 하더니 내게 전화를 바꿔준다. “기사아저씨. 걔를 어디서 태웠지요. ” “여 안동서...” 하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차비는 얼마지요. 고마 가 데려가소.” 한다. “예? 뭐라고요?” “기사 양반 맘대로 하소!” 그러더니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어이가 없는 표정을 하고 있으려니 지켜보던 경찰이 나를 밖으로 부른다. 사정은 딱하지만 미성년자는 방법이 없으니 그만 잊어버리고 돌아가라고 한다. 그러던 중 동이 트고 있었다. 담당경찰은 내 계좌번호, 명함을 기록하고 아가씨(이렇게 불러야 하나)에게는 차비 송금하고 연락을 꼭 하라고 당부를 한다. 마침 파출소는 근무교대시간이라 부산한 틈을 타 사무실을 나와 밀양을 벗어나는데 피곤이 몰려왔다. 전날 하루 종일 영업하고 마치는 시간에 출발했으니 몸도 정신도 피로한 상태였다.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눈을 뜨니 오후 2시였다. 돌아오는 길, 괘씸함 보다는 따뜻한 아침밥이라도 사줄껄 하는 후회가 들었다. 자식 키우는 나도 별수 없이 약해진다. 일찍이 부모가 이혼하고 멋대로 커온 소녀가 ‘맘대로 하라’고 큰소리치던 그 엄마 밑에서 무슨 정을 받고 또 제대로 교육이나 받았을까. 교복입고 학교 갈 또래들보다 험한 인생 너무 일찍 알아버린게지 싶어 마음 한쪽이 영 편치 않았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지만 소녀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다. 가끔 비오는 날이면, 자기도 속았다며 돈 없다고 당당하게 소리치던 철없는 소녀가 지금은 올바른 성인이 되었는지 어떤지, 미움보다는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아무튼 그때 이후 영업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장거리손님이라도 절대 태우고 가지 않는 징크스가 생겨버렸다. <안동> 통권 111호 - 택시기사 권태경의 세상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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