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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택시기사 권태경의 세상 엿보기 -털보형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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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름 | hahoemask | ||
등록일 | 07-11-18 13:34 | 조회수 | 12,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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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보형님!(글/권태경)
스산한 늦가을의 저녁시간. 빈차로 시내를 세 바퀴 돌고나니 흩날리는 낙엽처럼 생각 없는 질주뿐, 손님 찾기는 기사들끼리의 머리싸움의 연속이다. 신호대기를 죄 꿰뚫고 있어야 한다. 동시신호인지 연동식인지, 앞에 택시가 빈차면 좌회전 우회전을 빨리 판단해야하고 유턴지점이면 1차선을 타며 반대쪽을 살피고 가끔은 좋은 길목을 지키면서 숨고르기도 한다. 손님이 뜸하거나 없어도 그래도 굴러야한다는 택시의 사명감으로 옥동에서 용상까지 열심히 달려 어둠속에서 걸어오는 중년부부를 모셨다.
“어서오세요! 어디로 모실까요.”
“야! 송현!”
만취된 남자손님이 다짜고짜 반말이다.
“송현 어디쯤이죠.”
“야! 이 새끼야, 송현도 몰라. 그래 어리하이 택시하지. 안그케?”
“예, 맞니더.”
만취된 상태라 아예 포기하고 말을 맺었다. 담배를 태우기에 창문을 여니 “야, 이 새끼야. 추워!”하며 화를 낸다. 보다 못한 부인이 말리니 “넌 누구 편이야?”한다.
나는 인내9단의 한계를 넘나들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손님, 5천5백원입니다.”
“뭐 어째? 3천원이면 떡을 치는 거린데? 내가 하루 열두 번도 더 댕기는데 이칼래? 너 고발할거야!”
“손님, 그래도 차비는 주셔야죠.”
온갖 쌍소리를 다하더니 결국 3천원을 던지고 길건너로 가더니만 아니! 걸음도 갈지자로 억지로 걷는 양반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출발하는 차를 뒤따라 가보니 중앙선을 넘나들며 곡예를 한다. 안되겠다 싶어 나는 얼른 추월해서 차 앞에 서행을 하며 멈추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한 물건 하는데 맞짱 뜨자!
남자는 차에서 내려 내게 오더니 차문을 집어차며 욕설을 해댔다. 그럴수록 나는 차문을 잠근 채 음악을 더욱 크게 틀고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한참 뒤에 부인과 대화를 하더니 부인께서 나머지 차비 2천5백원을 보여주며 “받으시소” 한다. 나는 “아저씨를 보내세요.”했다. 내게 다가온 남자는 만원짜리를 보여주며 “이거주께, 된나!”한다. 나는 창문 틈으로 거스름돈 7천5백원을 주고, “손님. 많이 취하셨는데 집까지 그냥 태워드릴테니 차는 세우시죠.”했다. 한참 실랑이하던 부인이 억지로 택시에 태웠다. 집에 도착해서 이미 푹 잠든 그니를 둘이 부축해서 현관에 눕혀주고 돌아서는데 부인이 “차비는요.”한다. “제가 그냥 태워주기로 했으니 가보겠습니다.”하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 고생하는 부인을 생각하니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나도 가장인데 나 또한 집사람 고생시키는 건 아닌지 자책도 하면서 마음이 조금은 싱숭생숭해졌다.
다음날 오후,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털보택시 맞니껴.”
“예.”
“어젯밤에 그 집인데요. 지금 우리 집 양반이 좀 오실 수 있는지 한번 물어보라카네요.”
무슨 일인가 싶어 저녁쯤 해서 어젯밤 부부를 태워주었던 시골집에 도착하니 어제와 다르게 반갑게 맞아주는 남자. 동일인물이 맞나 싶어 어안이 벙벙해 있으니 넙죽 사과를 하며 악수를 한다.
“어제는 정말 죄송하이데이.”
옆에 있던 부인이 “저 양반은 법 없이도 사는 양반인데 술만 들어가면 감당이 불감당일시더. 고마 이해해주소.”하며 한마디 거든다.
연락이 안 왔어도 그만일법한데 굳이 이렇게 사과를 하니 나도 마음이 금방 풀어졌다. 부인이 “고마 밥 때도 됐는데 울 집서 식사하고 가소. 촌 음식 별거 있니껴. 사양 말고 한 수저 들고 가소.”한다. 한상 차려온 밥상을 마주하고 보니 막상 둘이서 별 할 말이 없다. 내가 먼저 날씨얘기로 시작해 정치, 교통사고 얘기로 이어지는 긴 대화 속에서 서로의 마음이 열렸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남자가 물었다.
“올해 나이가 몇이껴?” “예. 돼지띠요.”
“얼래? 내보다 3살 형님일시더.”
‘야, 이 새끼야’에서 ‘털보형님’으로 호칭이 바뀌는 역사적인(?)순간이다.
맛있는 저녁상을 물리고 어제 세워놓은 차 있는 곳까지 태워주었다. 다소곳하니 있던 남자는 “어제 털보형님 덕에 많이 배웠니더.”하며 차문을 열고 만원짜리 몇 장 던져주고는 “또 보시데이.”하곤 급히 가버렸다. 그날 이후 장날 팔다 남은 과일, 채소 등이 있으면 신시장 OO상회에 있으니 찾아가라며 전화도 가끔씩 한다. 나도 하회마을 주말공연 가는 길에 간고등어 한통 들고 들려보면 농사일로 빈집일 경우가 많아 부엌에 놓고 올 때도 있고, 부인이 좋아한다는 버버리찰떡 한통 가져가 점심도 같이 하기도 한다.
내가 어느 날, “그런데 아지매. 내 전화번호는 어예 알았니껴.” 하니 114에 택시회사 물어 전화해서 수염 난 털보기사 근무하냐 물으니, 회사는 달라도 차번호까지 다들 알고 있더란다.
“허허 내가 생겐에 나쁜 짓은 못할시더.”하니 웃음보가 터지는 아지매. “맞니더. 애인도 못 만들시더.”한다.
그렇게 만나 정이든 부부와 또 새로운 인연이 맺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맑은 하늘에 구름 한 점 떠있었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도 바람이 있어야 움직이듯 세상사 시끄럽게 시작되어도 조용히 용서하며 사는 것도 큰 미덕이고 그렇게 또 인연은 만들어지는 건가보다.<안동>
권태경
9년째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현재 경안택시에 근무 중이며,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 별신굿 탈놀이 보존회 전수조교로 활동하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후3시에 하회마을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다.
안/동/사/람/의/삶/과/생/각/을/담/는/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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