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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운수 좋은 날 & 택시는 인생을 싣고(향토문화의 사랑방 106호)
이 름 hahoemask
등록일 06-10-30 14:38 조회수 13,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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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별신굿탈놀이 보존회 전수조교 권 태 경이 들려주는 택시기사 이야기.. 1. 스님, 점심공양 하세요. 손님을 모시고 절에 도착했다. 손님은 법당에 들어가고 나는 마당에서 대웅전을 구경하는데 공양주 할머니께서 나를 스님으로 여기고 점심공양하시라며 한 상 푸짐하게 차려줄 때. 2. 고향 찾은 사업가 자수성가한 재미교포 사업가는 고향산천이 그리워 계절 따라 안동에 오지만 수몰된 고향땅과 고향친구 하나 없어 외로웠는데, 나를 만나고부터는 성묘도 함께하고 관광도 함께하고 즐거워졌다고 한다. 택시도 3일간 대절하니 나도 즐겁고 그도 즐겁다. 3.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용상손님타고 출발하려는데 다른 손님이 예천 가는지 물어본다. 먼저 타신 용상손님이 ‘내가 내릴테니 예천가세요’ 양보하면 예천손님은 ‘용상 모셔드리고 예천갑시다’ 하니, 용상도 가고 예천도 가고 오며가며 기분도 좋고 돈도 벌고. 또 한번은 새벽에 영주역에서 하회까지 예약손님이 있어서 대기 중인데 “어, 안동택시네, 안동 갑시다.”한다. “손님, 하회 들러서 갑니다.” 하니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 영주에서 하회, 그리고 안동, 거리만큼 기쁨 두 배다. 4. 주워온 사납금 버스 기사하는 친구가 시내 어디쯤 가면 만원권 비슷한 것이 있더라고 알려주는 전화에 가보니 정말 만원 한 장이 바람에 나풀나풀 거리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을 하고 갔는데 생각지도 않은 만원이 생겨 사납금에 보탠다. 5. 우연히 만난 월간지 기자 연합뉴스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연합 르페르> 2006년 3월호 134쪽에 실린 글이다. ‘안동은 유림의 땅이다. 조선중기 영남학파의 형성이후 유교문화가 두텁게 층위를 이뤄왔다. 과거의 전통이 오롯이 살아있어 한복을 입고 수염을 기른 택시기사를 만나기도 한다. 겨울과 봄이 포개지던 날, 안동토박이인 그 택시기사로부터 거슬러 받은 천원 권 지폐에는 영남학파의 정점인 퇴계 이황선생이 흐트러짐 없는 낯빛으로 경(敬)을 논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었던 그날의 기억을 이렇게 정갈하게 글로 실어놓으니, 평범한 우리네 일상이 새삼 남달라 보였다. 인상 깊은 안동행이었을 듯하여 나 또한 흐뭇하였다. 6. 베푸니 복이 오네 설날 아침 운행 중에 학교담장에 기대어 떨고 있는 걸인을 보았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명절인데 어디서 밥 한 끼나 먹을까 걱정스러워 되돌아가서 그때까지 번 돈 15,000원을 다 주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평소의 세배나 되는 수입을 올렸다. 우리말에 ‘받고 준다’는 말은 없어도 ‘주고 받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마음도 편하고 수입도 짭짤한 운수 좋은 날이었다. 운수 안 좋은 날도 더러 있다. 그러나 소설가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처럼 반어적인 표현으로 쓰일 수도 있다.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고, 큰 사고 안 났으니 이것 또한 운수 좋은 날이 아닐까. 그런 이야기도 몇 가지 있다. 1. 도저히 불안해서.... 입사 초기시절 내가 몰았던 택시는 40만 킬로를 주행한 스텔라였다. 새벽에 교대해서 강변에서 첫손님으로 부산손님을 태웠다. 그런데 손님이 갑자기 용상에서 “아저씨! 차 세우세요.”하더니 ‘이 차는 불안해서 갈 수가 없다.’며 만원 주며 내렸다. 아, 그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내 심정! 2. ‘확인’한 손님들 밤 11시 57분에 만취된 손님 5명이 일행이라며 부득불 사정해서 태웠다. 시골길을 가고 있는데 뒷좌석 손님 한분이 속이 불편했는지 행동이 영 불안했다. 어찌해서 도착하여 모두 내려놓고 시내로 들어와서야 나는 알았다. 만취한 손님이 그동안 먹은 것을 차 안팎으로 열심히 ‘확인’했음을. 그리고 내릴 때 유달리 말이 없었던 그들.......새벽 찬바람 맞으며 청소하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이럴 땐 평소에 안하던 팔자타령까지 하게 된다. 3. 무질서와 교통법규 왕복 8차선 도로. 중앙분리대가 키 높이까지였다. 나는 유턴하려고 1차선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2차로와 3차로에 진행하는 차량사이로 뛰어 들어온 학생이 조수석 문짝에 받쳐 넘어지면서 발을 다쳤다. 나는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었다. 사람우선인 우리 교통법규, 하지만 무질서와 사람우선은 구분해야 되지 싶다. 참 쓰린 날이었다. 4. 이게 웬 떡이냐! 새벽에 옥동에서 용상 가는 손님 모시고 가는 중에 도로위에 쌀 포대 하나가 있길래 낑낑대고 차에 실었다. 용상에 도착해서 손님과 풀어보니 버리는 신발이 한 포대였다. 옥동쓰레기를 용상까지 무료 수송한 나와 열심히 무료수송을 도운 손님.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자니 민망도 하고 웃음도 나고~ 5. 샤워하셨습니까? 한여름 오후에 고속도로 주행 중에 펑크가 났다. 갓길에 세우고 타이어를 교체하느라 땀 뻘뻘 흘리며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땀으로 시작해서 소나기로 샤워했다. 6. 범칙금 대령이오 오르막길 직진 신호에서 냉동탑차 뒤따라 통과했다가 우측도로에서 나오는 경찰차에 단속 걸려 신호위반 딱지를 받았다. 열심히 국가 경제에 일조를 한 날이다. 7. 머피의 법칙 오전에는 김해공항까지 호출 받고 오후에는 하회마을 왕복 호출 받았다. 쏠쏠한 날이 아닌가. 그러나, 하필 그날은 택시부재(쉬는 날)인 날이었다. 택시는 인생을 싣고 하루 종일 택시를 운전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남, 녀, 노, 소, 빈부 격차를 떠나 대화의 공감대는 같은 세대 즉 같은 나이또래로 모아진다. 내일 모레 오십 줄인 세대는 신세대 구세대도 아닌 중간세대로,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도 모시는 첫 세대인 것 같다. 이혼, 맞벌이가 늘면서 손주까지 키워주니까 말이다. 이 중간세대는 50년대 후반에 태어나서 대체로 유치원이 뭔지도 모르고 코 닦는 수건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검정고무신으로 20리길을 걸어서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등굣길은 동네마다 한 줄로 서서 ‘올해는 일하는 해’ ‘올해는 전진하는 해’ ‘도민의 노래’ ‘잘 살아 보세’를 합창하고 하굣길은 개구리 잡아 보리짚으로 빨대 만들어 똥구멍에 입으로 바람 넣어 배가 불룩해지면 물에 놓아주고, 보리 대가리 잘라 거꾸로 바지 가랑이에 넣고 조금만 걸어가면 엉덩이까지 올라오고, 보리깜부기 따서 입에 넣으면 입도 코도 까맣게 서로 마주보며 웃어도 보았다. 어쩌다 소나기 만나면 으레 그 비를 다 맞고, 운 좋으면 신작로 지천에 미꾸라지를 잡아 고무신에 가득 담아 의기양양하게 마당에 들어선다. 엄마를 크게 불러보면 들에 가신 엄마는 없어도 담 밑에 누렁이는 꼬리치며 반겨주고 미꾸라지 한 마리 던져주면 신나 뛰는 누렁이. 허기를 느껴 부엌문을 열어보면, 부뚜막엔 삼베보자기 덮어진 소반이 있고 하얀 사기그릇엔 보리밥, 열무김치, 간장종지.......식은 밥에 콩가루 비벼 속을 든든히 달래고 소나기 그치면 외양간 소를 몰고 들로 나간다. 소는 저 혼자 배부르게 풀을 뜯고, 태양의 반대쪽엔 고운 무지개가 서 있다. 먼 산 너머엔 뭉게구름 흘러가고 쪽빛하늘 바라보던 유년시절 은 그렇게 그렇게 훌쩍 지나갔다. 그 시절 학교급식인 우유가루를 받아 집에 가서 밥솥에 찌면 노란색으로 덩어리지는데 달리 간식이 없었던 그때 그 맛은 최고였다. 광목자루에 선명했던 악수하는 모습 옆으로 별이 그려져 있는 그림은 미국에 원조품인 걸 알려줬다. 그 다음으로 옥수수죽, 옥수수떡, 가다빵(덩어리식빵) 노릇노릇 맛있고 어떨 땐 반은 타고 그나마 학생수보다 적어 하루건너 한 개씩, 아니면 반으로 잘라 고른 분배를 할 때도 있었다. 중학교시험은 무시험의 특혜도 맛보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은 공업고등학교를 선호했다. 한 가지 기술이라도 있어야 먹고산다는 게 어른들의 생각이었다. 대학은 어림도 없고 한동네 두세 명쯤 산업체 취직이 다수인데 부설야간대학이 주경야독의 기회를 주니까 그렇게 성장기는 지나갔다. 군사정권 후반기의 혼란 속에서도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사회생활, 결혼생활이 시작된다. 이렇듯 손님과의 대화는 대체로 들어주는 편이고 추임새도 많이 넣고 내 얘기도 들려준다. 남자손님의 경우 주로 부모님 눈치 보는 것과 자식교육, 마누라 바가지에 부부 싸움하는 얘기, 부부싸움의 끝에는 항상 돈 문제로 서로 피곤해졌음을 얘기한다. 그리곤 “기사님 맞지요?” 하면 “예, 나도 그럽니다.” 하곤 맞장구를 쳐준다. 여자 손님의 경우 시부모 모시고 시동생 출가시키고 나니 애들도 벌써 대학생, 졸업까지 학비는 얼마요, 취직은 어떻고. 모처럼 동창회가서 수다로 회포를 풀었는데 한 친구는 새로 나온 중형차를 바꿔주는 신랑자랑에 한창이고 자신은 십년 전 딴 면허가 장롱에서 잠자고 있다고 한숨이다. 방문을 열고 곤히 잠든 남편 얼굴 바라보니 측은하기도 하고 안됐기도 하더란다. “기사 아저씨 내가 이래 사니더!” 신세한탄에 “예, 나도 그럽니다. 다들 글니더. 그래그래 사는 거래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인생속도는 빨라지고 운전은 할수록 차 속도는 늦어지고, 좋은 생각으로 좋은 세상 열어 가는데 그래도 중간세대가 바로 서야 옳지 않겠나 싶다. 글코보면 나도 참말로 운전하면서 인생 철학자가 다 됐다. 그 어려운 철학을 운전하면서 깨치네. <안동> 글쓴이 권태경씨는 8년째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현재 경안택시에 근무 중이며,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69호 하회 별신굿 탈놀이 보존회 전수조교로도 활동하고 있다. 통권 106호 - 택시기사 권태경의 세상 엿보기 *아래를 클릭하면 사랑방홈페이지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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