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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택시기사 권태경의 세상 엿보기 -스무번째 이야기 <고향유정>
이 름 hahoemask
등록일 07-12-30 22:57 조회수 1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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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웠던 여름을 보내고 추석을 한달 앞둔 8월의 하순이었다. 한창 성묘를 하는 시기, 그날도 한산한 버스승강장에 잠시 대기하며 차 안팎을 정리하고 있었다. 몸도 풀고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내게 한 중년의 신사가 다가왔다. “기사양반, 뭐 좀 물어봅시다.” 보여주는 메모지를 보니 청송 쪽 산골마을이다. 지금 출발한대도 버스로는 오늘 돌아올 수 없는 거리여서 택시로 왕복하기로 하고 기분 좋은 출발을 했다. 미국생활 30년 만에 고향 찾아오는 길이라는 남자는 “해마다 형님께서 성묘를 하셨는데 2년 전 돌아가시고 조카도 연락이 닿지 않네요.”한다. 목적지에 도착해 이집 저집 수소문 해보니 아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 모두가 낯설 뿐이다. 벌초도구를 빌려 나와 같이 산소에 가서 벌초를 마치고 마을에 내려오니 이미 어둠이 내렸다. 안동으로 돌아오는 길, 서로 통성명도 하고 나이도 물어보고 마침 한 살 차이라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권형, 역시 고향이 좋구려. 오늘 하루는 여기서 묵고 내일 대구공항으로 갈까 하는데 지금부터 식사도 같이 하고 술 한 잔 하시죠.” 그러면서 수표를 두 장 건네준다. 좋은 기분으로 호텔에 차를 세워두고 한우갈비집으로 안내했다. 비워지는 술에 손님에서 친구가 되고 잔뜩 취기가 오르자 “내 말 좀 들어보소.”로 시작되는 그의 성장기. 나이 열아홉에 미국으로 가서 막노동으로 시작해 접시 닦기 등 몸으로 하는 일은 닥치는대로 해서 생계를 잇다가 어느 산골 여관의 청소부로 취직이 되었다. 규모는 작지만 등산로가 있어서 방은 늘 비는 날이 없었다. 주인의 신임을 얻으며 5년 정도 되던 해 겨울이었다. 밤늦은 시간에 노인부부가 손님으로 오셨는데 방은 예약이 다 끝난 터라 빈방이 없었다. 게다가 다른 여관까지의 거리가 100리길이라 난감해 하길래 그가 나섰다. “할머니. 지금 밖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밤도 늦었으니 제가 쓰는 방도 괜찮다면 그냥 쓰셔도 괜찮으니 한번 보실래요?” 노부부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는 동료의 방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버스정류장까지 가방을 들고 마중을 해드렸다. 그날로부터 한 달 뒤 노부부에게서 편지가 왔다. ‘인사가 늦었소. 그때의 신세를 잊을 수 없소. 언제라도 좋으니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소.’ 마침 한 달 뒤 휴가계획이 있던 터라 그는 노부부의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날짜가 정해지자 노부부는 왕복 비행기표를 보냈다. 공항에 도착하니 온 가족이 마중을 아와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이틀을 머물고 삼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 도시에서 제일 큰 호텔로 그를 안내한 노신사는 식사를 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 이 호텔은 내가 20년째 경영하는데 지금 지배인 자리가 마침 비었구려. 젊은이가 이 호텔에 지배인으로 오면 내 보수는 얼마든지 드리지요.” 휴가를 마치고 여관으로 돌아와 주인에게 알리니 큰 도시로 가는 것이 잘되었다며 승낙해주었다고 한다. 청소부 일을 정리하고 도시의 지배인이 되어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일해 왔고 앞으로는 경영자 역할도 해야 하는 책임 또한 크다고 했다. 나이 오십이 되고 보니 그동안 앞만 보고 살았는데 이제는 고향이 그립고 형님 없는 고향이지만 매년 성묘를 하고 관광도 하고 싶다고 했다. 어느덧 취기가 오른 우리는 비워지는 술병처럼 서로의 마음을 비워보기도 하고 그의 하소연에 추임새로 받아주기도 했다. 연탄불에 구워지는 갈비연기 사이로 옛 추억도 되살려보다가 우리는 술집을 나와 시원한 밤공기를 맞으며 웅부공원 대동루에 올랐다. “김형. 잊고 싶은 기억은 저 달 속에 묻어버리고 새 희망은 동트는 아침 태양에 그리는 것이고 세상사 대수랍니까. 풍진 세상 바람맞고 사는거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깊어가는 밤처럼 우리의 우정도 깊어갔다. 다음날 오후 대구공항에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 후의 만남에서는 내가 두루막과 유건을 선물했고 그걸 계기로 매년 설날에는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이웃주민들이 모두 모여 차례를 지내는데, 두루막을 입고 유건도 써보고 음복을 나누며 동네잔치를 벌인다고 하니 그의 고향행은 헛되지 않았다. 한국사람의 정서를 알리는 시간도 되니 좋고 한번은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학교축제에서 제사지내는 모습을 연기하여 연기대상을 수상 했다며 국제전화로 기쁘게 알려주기도 했다. “김형. 아이들 출가시키면 고향 안동으로 오소. 그동안 비워진 속을 버버리 찰떡으로 골밈하고 간고등어 안주로 안동소주 비우며 흥이 나면 성주풀이 한 자락 부르고 살얼음 낀 안동식혜로 입가심하면 어떨까 싶소.” <안동> <택시기사 권태경의 세상 엿보기 연재를 마치며> 글을 쓴다는 것. 일기도 못 쓰는 내가 한번만 써보자던 사랑방‘안동’의 배려로 어느새 2년을 연재했다. 생활 속 이야기지만 주제, 제목 어느 것 하나 걱정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혼자만의 공간을 찾느라 여기저기 돌다가, 하회전수관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졸고지만 최선을 다했다. 공연이 끝나고 모두가 떠난 공간에서 윤기 나는 밤하늘 수많은 별자리를 바라보다 방에 들어가면 주체할 수 없는 고요와 조우했다. 뒤뜰 벌레소리만 간간이 정적을 깨울 뿐, 무거운 침묵의 시간은 길었고 사색도 따라서 깊어지고 밤새 쓴 원고가 아침에 보면 아니다 싶어 구겨버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가끔은 가까운 산사를 찾는다. 오래된 역사지만 번듯한 요사채 하나 없다. 작은 절이지만 지금까지 평생 수도만 하신 큰 바위 얼굴처럼 인자하신 스님이 계신다. 정성껏 우려내는 차향은 내 영혼을 씻어주고 저녁 공양으로 어둠이 내리면 고운 미소의 법당 보살님의 배웅으로 산사에서 내려오는 길 중도 속도 아닌 나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다. 두서없는 솜씨로 종종 실망했을 독자께는 죄송함을, 격려해주신 분께는 송구함을, 호의적이든 비판적이든 모든 독자분께 감사를 드린다. *그동안 ‘택시기사 권태경의 세상 엿보기’를 집필해주신 권태경님께 감사드립니다. 겨울 지나 봄이 되면 매주 일요일 하회마을에 있는 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공연장에서 권태경씨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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